“오늘은 특별한 데이트를 해볼까?”
그녀의 한 마디에 내 심장은 괜히 두근거렸다.
강남 어디쯤, 간판조차 눈에 잘 띄지 않는 골목 끝에 자리한 셔츠룸.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평범한 데이트의 모든 규칙은 사라졌다.
문을 열자 은은한 조명이 우리를 삼켰다.
셔츠룸 특유의 분위기는 살짝 비밀스럽고, 묘하게 아늑했다.
직원이 웃으며 안내하더니,
“오늘 파트너분과 함께 오셨으니 편하게 즐기시면 됩니다.”
그녀와 나는 긴 테이블 양끝에 앉아,
애매하게 시선을 피하며 칵테일을 주문했다.
평소라면 함께 영화나 볼 법한 토요일 저녁.
그날따라 서로의 눈빛이 묘하게 달아올랐다.
곧 담당 매니저가 우리 테이블에 와서 웃으며 물었다.
“둘만의 시간을 원하시나요, 아니면 다양한 스타일을 경험해보실래요?”
나는 머뭇거렸지만, 그녀는 당당히 대답했다.
“다양한 걸 좋아해요.”
곧이어 셔츠를 곱게 차려입은 직원들이 등장했다.
각자의 매력을 뽐내며 잔을 채워주는데,
그녀도 슬쩍 눈길을 주며 나를 놀렸다.
“오~ 부끄러워? 나랑 놀 때랑은 다르네?”
평소엔 얌전하던 그녀였지만,
이 공간에서는 마치 게임의 룰이 바뀐 듯했다.
잔이 몇 번 오가고 나자,
우리는 이미 평소의 우리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내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며
“여긴 강남 셔츠룸이니까, 셔츠 좀 열어도 되지?” 하고는 깔깔 웃었다.
나도 질 수 없었다.
그녀가 마시던 잔을 슬쩍 빼앗아 한 번에 비우고,
“오늘은 내가 이긴다!” 선언했다.
그때 매니저가 분위기를 더 달궈보겠다며
마이크를 건넸다.
“노래 한 곡 하시면 서비스 더 드려요!”
평소라면 절대 마이크를 안 잡을 그녀가
그 순간엔 망설임 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시작된 태연의 ‘만약에’.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때,
나는 잠깐 멈춰서 생각했다.
이게 진짜 현실이 맞나?
웃음과 취기가 뒤섞인 순간,
우리 둘은 세상 누구보다 가까워졌다.
노래가 끝나자,
셔츠 차림의 직원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뭔가 모르게 질투가 올라왔다.
그녀도 그런 내 표정을 알아차린 듯 피식 웃었다.
“괜히 귀여운 척하네. 질투 났어?”
대답은 하지 못했다.
대신 그녀의 손을 잡고 테이블 아래로 살짝 끌어당겼다.
그 순간,
그녀의 손길이 전해져 오고,
내 심장은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결국 우리는 마지막 잔을 함께 비우며,
조용히 서로 기대앉았다.
강남 셔츠룸이라는 공간에서
처음으로 솔직한 감정들을 확인한 밤이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강남 거리는 여전히 화려했다.
택시를 잡으며 그녀가 말했다.
“오늘 좀 색달랐지?
다음엔 더 재밌는 데 가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오늘이 최고였어.”
그날 밤 이후,
우리는 종종 이런 특별한 데이트를 떠올리며
서로를 놀리곤 한다.
아마도 연애의 맛은,
때론 일탈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