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서울 촌놈 티를 한껏 내며 인천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커피 한 잔만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
간판이 살짝 기울어진 인천 다방을 보고,
“아, 여기 싸고 시원하겠다!” 하고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낡은 종소리가 ‘딸랑~’ 하고 울리며
나를 제3의 차원으로 초대했다.
카운터 너머 아줌마가 날 스캔하는 그 눈빛,
마치 “또 왔구나, 오늘의 제물…” 이라고 하는 듯했다.
메뉴판을 펼치자 ‘아메리카노 3,000원’이 눈에 띄었다.
“오케이, 오늘 커피도 알뜰하게 마시는구나!”
기분 좋게 주문하려는데,
갑자기 옆 테이블에서
화사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베트남 여성 두 분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오늘의 스폰서님이 오셨군요~”
하는 따스한(?) 기운이 흘렀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무리 봐도 평범한 카페 느낌은 아니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물을 한 모금 마시는데,
그녀들이 내 옆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리고 마치 오래전부터 친구였던 것처럼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오빠, 커피 사주면 돼요~”
순간, 머릿속이 백지가 됐다.
“나… 오빠인가? 누구 오빠지?”
나는 현실을 부정하며
컵받침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나 이미 게임은 시작된 듯했다.
그녀들은 웃고 있었고,
나는 카운터로 걸어가고 있었다.
주문은 분명 ‘아메리카노 두 잔’이었는데,
계산서엔 ‘아메리카노 X4 + 서비스료’가 찍혀 있었다.
“이게 혹시… 다방의 룰인가?”
머릿속에서 ‘아는 형님’ 자막이 떠올랐다.
“모르면 당하는 거야~”
주인아줌마는 나를 향해
오랜 다방 경력에서 우러난 자신감의 미소를 보냈다.
나는 카드 단말기에 카드를 대며
조용히 최면을 걸었다.
“이건… 인생 경험이야… 그렇지… 인생 경험…”
하지만 통장 잔고도 함께 빠져나갔다.
커피가 도착하자
그녀들은 내 옆에서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오빠, 짠~!”
이제 나는 그 다방의 공식 스폰서가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왜… 왜… 왜…’
라는 자막이 돌아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나섰다.
햇살이 눈부시게 따가웠다.
뒤에서 그녀들의 합창이 들렸다.
“오빠~ 또 와요~”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냐… 안 와… 다시는 안 와…”
그 순간,
세상에서 제일 값비싼 아메리카노 맛이
입안에 남았다.